작년 중순 쯤 필립스 휴를 들였다. 그때는 정말 IoT에 관심도 없고 ‘이 좁은 집에서 그런 걸 해봤자 무슨 이득이 있겠냐’ 하는 생각이었으며 그냥 조명 색도 슉슉 바뀌고 누워서 켜고 끄는게 신기해서(오랜만에 예산도 남는 겸) 구매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2세대가 막 출시한 시점이라 국내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2세대 허브 1세대 전구’ 킷을 골랐다.
마음먹고 질러야 하는 몸값
사실 일반 E26 소켓 전구는 이마트에서도 개당 만 원 이내로 구매할 수 있는데 필립스 휴 전구는 10배가 넘는 사악한 가격에 판매되고있다. 어떤 미친놈의 돈지랄일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 돈 남는 날의 지름신은 ‘성내동 조기축구회의 메시’다. 그래도 279,000원하던 2.0 스타터팩(허브1 전구3)이 지금 현재에는 10장 중반으로 내려왔으니 새로 구매하는 분들은 스타터팩이 굉장히 남는 장사일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2.0 허브
뒷 면에 홀이 파여져있어 벽에 걸어놓을 수 있다. 나는 가여운 세입자이므로 3M 코맨드를 사용했다.
먼저 2세대 허브는 1세대에 비해 완전히 모양이 바뀌었으며 크기도 좀 더 커졌다. 아마 2세대를 1세대로 속아 사는 호갱님들을 위한 큰 배려일 것으로 짐작된다.(실제로 구매할 때 2세대 상품페이지로 진입을 했으나 1세대 허브가 올려져있는 경우가 종종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애플 홈킷 지원인데 허브 설정 단계에서 브릿지 연동을 해두면 iOS기기의 ‘홈’앱에서 모든 악세사리를 제어할 수 있다. 물론, 시리도 함께 지원된다.
부족하지는 않은 1세대 전구
우선 전구는 테스트용 1세대 한 마리로 골라왔다. 허브와 전구의 세대 차가 있지만 별 문제 없이 잘 연결된다. 다만 2세대 전구는 4000K 기준 550루멘에서 800루멘으로, 외장색이 실버에서 라이트 그레이로 변경됐으며 전력소모량이 8.5W에서 10W로 다소 증가한 것이 차이점이다. 1세대 전구는 이케아 Tertial 작업등에 물렸는데 책상 위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밝기다.
필립스 휴 X 애플 Homekit
Philips HUE app
Apple Home app
공식 앱으로 초기 설정을 해야한다. 최근 애플 홈킷에서 바로 연결이 되는 것을 보았지만 추후 안정성과 확장성을 위해서는 공식 앱으로 설정 후 데이터를 홈킷으로 전송하는 방식이 더 나을 것 같다. 휴 앱에는 크게 조명 및 악세사리 제어와 자동화(루틴), 외부 제어 파트로 나뉘는데 대부분 애플 홈 앱에서 대체 가능한 기능들이다. 아무래도 서드파티 앱을 통해 조작하는 것보다 OS 기본 기능을 사용하는게 접근성과 반응성 면에서 빠릿한 듯 해서다. 다만 외부에서 조작할 경우 홈킷은 홈 허브로 사용할 아이패드나 애플TV가 있어야 작동하지만 휴 앱은 필립스 계정으로 로그인만 해두면 제약없이 접근 할 수 있다.
드디어 시리를 머슴처럼 부리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의 멍청한 똑똑이 시리로 조명 On/Off와 디밍, 모드 설정을 할 수 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잘 안된다. “조명 꺼” “조명 켜” 같은 단순 온오프 기능은 잘 알아먹는데 “시네마 모드 시작해” “휴식 모드 시작해” 같은 모드가 말썽이다. 알고보니 홈 앱에서 추가한 모드가 휴 앱에 정상적으로 추가가 안되어 모드 명을 못 알아 먹는 것이었다. 홈킷의 모드와 휴 앱의 연출 장면이 서로 동기화 되는 것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보다. 휴 앱의 ‘Homekit 및 시리’에 들어가보니 ‘연출 장면’에서 오류를 뿜뿜 하고 있어 일일히 홈킷 모드와 동일한 조명 설정을 연출 장면에 넣어주니 그제서야 잘 작동한다.
후회하지는 않을 착한 지름
스마트 전구인만큼 사용성이 무궁무진한데 작업등만으로 쓰기에는 돈값을 못하는 것 같아 2세대 전구 두 놈을 추가로 구입하여 주 조명으로 사용하고있다. 다만 지금 살고있는 집 메인 조명에는 E26 소켓이 하나도 없어서 매립등은 모두 꺼놓고 스탠드등, 작업등, 거실등으로 대체하고있다. 없던 조명 베이스까지 사느라 돈이 좀 깨졌지만 만족도는 더 올라간 듯하다. 매일 밤 모든 불을 끄고 새까만 방 안을 더듬거리며 침대를 찾는 일은 더 이상 없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시리야, 잘자” 하는 것 만으로도 돈 값하는 지름이었다고 생각된다.